한 달 동안 정형외과를 다니며 파라핀 치료와 물리치료를 반복했습니다. 매일같이 뜨거운 파라핀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뻣뻣했던 손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기대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손을 많이 써서 생긴 거겠지, 잠깐 쉬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넘기며 지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이 시기만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은 점점 더 굳어갔고, 아침마다 움직이는 게 눈에 띄게 불편해졌습니다.
퇴근할 즈음이면 얼굴이 유독 달아오르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주방 열기 때문인가 싶어 찬물로 세수를 해보기도 했지만 잠깐뿐이었습니다. 금방 다시 열이 올라왔고 뺨 주위가 화끈거렸습니다. 몸은 계속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었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예전 같지 않게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일이 많고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이게 몇 주째 계속 이어지니까 단순히 피곤해서 생기는 느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늘 보던 의사 선생님이 제 손을 보시고는 평소보다 오래 살피셨습니다. 손마디를 만져보시더니 얼굴도 한참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진료실 분위기가 평소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선생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소견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습니다. 제가 소견서를 써드릴 테니 바로 대학병원 류마티스 내과로 가보세요."
그 말을 듣고 바로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류마티스'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고, 왜 정형외과가 아닌 내과를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상태를 그냥 넘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동안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 기준이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 소견서를 손에 쥐고 곧장 대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예상과 달랐던 첫 진료
예약도 없이 찾아간 대학병원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면서도 사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검사 몇 개 하고 약이나 좀 타서 돌아가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소견서를 확인한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접수처에서부터 분위기가 급하게 돌아가니까 괜히 더 겁이 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제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교수님은 제가 가져온 소견서를 훑어보시더니 제 얼굴과 손을 잠깐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상태는 바로 치료해야 합니다. 수치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오늘 바로 입원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입원이라는 말을 이렇게 갑자기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장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줄지어 떠올랐습니다. 가게 일은 어떡하지, 당장 오늘 예약된 작업들은, 준비해 둔 재료들은 다 버려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내일 오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지금은 일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정리할 시간도 없이 입원 수속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가게 문을 닫겠다는 공지를 올리고 정신없이 수속을 밟았습니다. 일터를 떠나 병원 침대에 앉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꼭 남의 일인 것처럼 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
입원 수속을 마치고 낯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상황이 조금씩 실감 났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밖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병원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팔에는 벌써 링거 바늘이 꽂혔고, 그 차가운 수액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생경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입원과 동시에 각종 검사가 이어졌고, 피를 몇 번이나 뽑았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들어와 혈압을 재고 체온을 확인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런 병원 분위기를 겪으며 그제야 내가 진짜 환자가 됐다는 게 무겁게 와닿았습니다.
병실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동안 그냥 넘겼던 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던 날들, 아무리 쉬어도 나아지지 않던 몸 상태, 뻣뻣한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이며 버티던 아침들. 이미 몸은 계속 못 버티겠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걸 계속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저 스스로를 속이며 계속 밀어붙였던 것 같습니다.
멈추게 된 계기
그날 이후로 제 모든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일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버텼습니다. 일을 계속하면서 치료를 병행하면 금방 나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더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멈춘 게 아니라, 더는 버티면 안 되는 상태였습니다.
파라핀 치료를 받으면서 다시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던 일상은 그날로 멈췄습니다. 대신 병실에서 이름 모를 결과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당황스럽고 겁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야 이 알 수 없던 증상들의 이유를 알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계속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미련하게 그냥 넘겼을까.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나는 왜 그걸 계속 지나쳤을까.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데, 저만 혼자 다른 세상에 뚝 떨어져 나온 것 같았습니다. 몸은 벌써부터 못 하겠다고 손을 들고 있었는데, 나 혼자 모른 척하며 너무 무리해서 끌고 왔구나 싶었습니다.
진단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제 몸은 계속 같은 상태가 아니라,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더 속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 기록에는 제가 왜 '이제 괜찮아지나 보다' 하고 넘겼는지, 그렇게 반복되던 몸 상태에 대해 이어서 적어보려 합니다.
※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정확한 확인은 병원 상담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