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말을 잘 안 하게 됐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베이커리에서 일하던 때부터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프다고 하면 그 자리 공기가 달라지는 걸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괜찮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고,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냥 했습니다. 오늘만 지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괜찮은 척하는 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도 다들 피곤하다고 했고, 주변 사람들도 참고 지냈습니다. 저도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조금 무겁고 버거운 날도 있었지만 저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쉬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날 할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집에 온 뒤부터였습니다.
지나가는 건 그날 하루만이 아니었습니다.
괜찮다고 말한 다음 날은 아침부터 달랐습니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데 시간이 더 걸렸고, 씻고 밥을 먹는 일도 늦어졌습니다.

루푸스 말하지 못했던 첫 직장 생활
결혼하고 루푸스를 진단받은 채로 새 직장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루푸스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몸이 가볍지 않은 날도 그냥 출근했습니다. 쉬고 싶다는 말은 더 하기 어려웠습니다. 처음부터 아픈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누웠습니다. 옷도 못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있던 날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차려준 밥을 앞에 두고 한참 그대로 있다가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는커녕 씻는 것도 늦어졌습니다.
아침은 늘 비슷했습니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고, 씻고 준비하는 것도 평소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도 또 출근했습니다. 하루 빠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 정도는 다들 참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토요일은 거의 누워 있었습니다. 일요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쉬는 날인데도 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어딘가 다녀온 기억보다 천장을 보며 누워 있던 기억이 더 많았습니다.
괜찮다고 했는데 괜찮지 않았습니다
약속도 비슷했습니다.
몸이 조금 무거운 날이었는데 오래전에 잡아둔 약속이 있었습니다. 취소하면 미안하니까 그냥 나갔습니다. 집을 나서는 것부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나아질 줄 알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웃고 이야기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랑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근데 속으로는 빨리 끝났으면 했습니다. 중간에 화장실에 가서 벽에 등을 기대고 잠깐 서 있던 날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가 그대로 잠든 날도 있었습니다. 다음 날은 평소처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씻고 밥 먹고 집안일을 시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하루 이틀이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근데 며칠 동안은 아침이 달랐습니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고, 움직이는 속도도 평소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됐습니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괜찮다고 말한 하루가 정말 괜찮은 하루는 아니었다는 걸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괜찮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정말 괜찮은 줄 압니다. 다음에도 괜찮겠지 생각합니다. 그러면 나도 또 괜찮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먼저 힘들다고 꺼내는 게 더 어려워졌습니다.
남편한테도 그랬습니다. 걷는 게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고, 쉬고 싶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말하면 걱정할 것 같았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면 나도 정말 괜찮아질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대퇴골 무혈성 괴사 때문에 오래 걷는 게 힘들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밖에 다녀오면 다리가 욱신거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걷는 게 너무 힘들어 보인다면서 목발을 사줬습니다. 나는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날이 있었던 겁니다.
그날 이후부터는 예전처럼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지는 않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걷는 게 힘들다고 말하면 이동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약속 시간을 늦추거나 다른 날로 옮기는 일도 생겼습니다. 오늘 어렵다고 말한 날은 집에 조금 더 일찍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면 그날은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근데 그 뒤 며칠은 아침부터 달랐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선택들
| 그때 | 지금 |
|---|---|
|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 "오늘은 조금 어렵겠어요."라고 말합니다. |
|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 날짜를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
| 집에 오자마자 누웠습니다. | 집에 와서 저녁을 먹습니다. |
| 주말 대부분을 누워서 보냈습니다. | 토요일 오전에 커피를 마시러 나가는 날도 있습니다. |
지금은 예전처럼 무조건 버티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말하는 게 편한 건 아닙니다. 괜히 예민하게 보일까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오래 아팠다고 해서 매번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무조건 괜찮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어렵겠다고 말하는 날도 있습니다. 약속을 미루는 날도 있습니다. 집에서 쉬는 날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나갔을 약속을 미루는 날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상대방이 실망했을까 봐 자꾸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약속을 미룬 날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습니다. 반대로 억지로 나갔던 날은 며칠 동안 아침이 힘들었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조금 빨리 말합니다. 오늘은 어렵다고 말하고, 집에 있겠다고 말하고, 다음에 보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한 날은 미안한 마음이 남을 때도 있습니다.
그날 밤 밥을 먹고 씻고 누울 수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 더 그랬습니다.
괜찮은 척을 안 하게 된 건 아닙니다. 아직도 가끔은 괜찮다고 말합니다. 다만 예전처럼 끝까지 숨기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어렵겠다고 말하는 날이 생겼고, 약속을 미루는 날도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그 말을 못 해서 며칠을 누워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 먼저 말하고 하루 먼저 쉽니다.
괜찮은 날에도 일찍 멈추게 된 이야기는 이전 글에도 적어두었습니다.
※ 이 글은 루푸스를 진단받은 환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의학적 조언이나 진단을 대체하지 않으며, 건강 관련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