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이번 글은 평소와 다르게 편지 형식으로 적어봅니다. 그때의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옮겨보려고 합니다.
베이커리에서 일하던 스무 살의 너에게.
아프다고 말하면 그 자리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끼고 나서, 너는 괜찮다는 말을 배웠어. 조금 힘들어도 괜찮다고,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오늘만 지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잖아.
그 생각, 틀린 건 아니었어. 다만 오늘 하루만 지나가는 게 아니었을 뿐이야. 그때는 몸이 보내는 신호와 마음이 하는 말이 따로 놀았어. 몸은 이미 힘들다고 하는데, 마음은 그 정도는 괜찮다고 우겼거든. 그 둘 사이에서 늘 마음이 이겼고, 그 대가는 항상 며칠 뒤에 찾아왔어.
결혼하고 새 직장에 들어갔을 때 너를 기억해. 루푸스를 진단받은 채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몸이 편치 않은 날도 그냥 출근했잖아. 쉬고 싶다는 말은 더 어려웠어. 아픈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새로 온 사람이 벌써부터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보일까, 그 생각이 컸어. 다들 그 정도는 참고 다니는 것 같았고, 나만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몸보다 그 자리에서의 인상이 먼저였던 시절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아무도 그렇게까지 지켜보고 있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그게 제일 무서웠던 것 같아.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누웠잖아. 옷도 못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있던 날, 남편이 차려준 밥을 앞에 두고 한참 그대로 있다가 먹은 날도 있었고. 그래도 다음 날 또 출근했어. 하루 빠지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이 정도는 다들 참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어.
토요일은 거의 누워서 보냈어. 일요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쉬는 날인데 쉬는 것 같지 않았던 그 기분, 지금도 기억나. 월요일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던 것도 기억해. 주말 내내 회복하려고 애썼는데 월요일 아침이 되면 늘 제자리였잖아.
약속도 비슷했어. 몸이 조금 무거운 날, 오래전에 잡아둔 약속을 취소하기가 미안해서 그냥 나갔잖아. 자리에 앉아 웃고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빨리 끝났으면 했고. 중간에 화장실 벽에 등을 기대고 잠깐 서 있던 날도 있었어. 집에 돌아와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었던 날, 다음 날 씻고 밥 먹고 집안일을 시작하는 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던 걸 기억해.
하루 이틀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며칠씩 그 상태가 계속됐잖아. 그때 조금씩 알게 됐어. 괜찮다고 말한 하루가 정말 괜찮은 하루는 아니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만, 사실 그 며칠은 나 혼자만 감당하고 있었던 거야. 옆에서 보기엔 아무 일 없어 보였을 테니까.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며칠을 함께 짊어져 주지 않는다는 걸 그렇게 몸으로 배웠어.
남편한테도 그랬어. 걷는 게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고, 쉬고 싶어도 괜찮다고 했지. 말하면 걱정할 것 같았으니까. 대퇴골 무혈성 괴사로 오래 걷는 게 힘들었던 그 시기에도, 계단 내려가는 게 조심스럽고 다리가 욱신거려도 괜찮다고 말했잖아.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도 그랬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해. 걱정시키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걱정을 받는 게 더 불편했던 걸까. 아마 둘 다였을 거야. 괜찮다고 말하면 나도 정말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어느 날 남편이 목발을 사다 줬던 거 기억해? 걷는 게 너무 힘들어 보인다면서. 그때 알았어.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날이 있었다는 걸.
그 목발을 처음 짚었던 날, 부끄러움보다 안도감이 더 컸어. 더는 아무렇지 않은 척 걷지 않아도 됐으니까. 누군가 먼저 알아봐 준다는 게 그렇게 큰 위안이 될 줄은 그때 몰랐어.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 목발 하나가 알려준 셈이야.
그날 이후로 너는 조금씩 달라졌어. 오늘은 걷는 게 힘들다고 말하면 이동 방법이 달라졌고, 약속 시간을 늦추거나 옮길 수 있었어. 오늘 어렵다고 말한 날은 집에 조금 더 일찍 들어올 수 있었고.
지금의 나는 이렇게 지내. "괜찮아요" 대신 "오늘은 조금 어렵겠어요"라고 말해. 약속 장소로 무작정 가는 대신 날짜를 바꾸는 날도 있어. 집에 오자마자 눕는 대신 저녁을 챙겨 먹고, 주말 내내 누워 있는 대신 토요일 오전에 커피 한 잔 하러 나가는 날도 생겼어. 별것 아닌 변화 같지만, 그때의 너한테는 상상도 못 했던 하루들이야.
말하는 게 편해진 건 아니야. 지금도 괜히 예민하게 보일까 봐 걱정될 때가 있어. 처음엔 그런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했어. 상대방이 실망했을까 봐 신경 쓰이더라. 근데 지나고 보면 약속을 미룬 날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억지로 나갔던 날은 며칠 동안 아침이 힘들었어.
요즘은 예전보다 조금 빨리 말해. 오늘은 어렵다고, 집에 있겠다고, 다음에 보자고. 그렇게 말한 날은 미안한 마음이 남기도 해. 그래도 그날 밤 밥을 먹고 씻고 누울 수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져.
너에게 괜찮은 척을 그만두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야. 나도 아직 가끔은 괜찮다고 말하거든. 다만 예전처럼 끝까지 숨기지는 않아. 오늘은 어렵겠다고 말하는 날이 생겼고, 그걸로 충분해.
완벽하게 고쳐진 건 아니야. 지금도 괜찮다는 말이 먼저 나올 때가 있어. 다만 예전보다 그 말을 거두는 속도가 빨라졌어. 하루 이틀 안에는 다시 말할 수 있게 됐거든. 그 정도의 변화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을 거야.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나아지는 거라는 걸, 지금의 나는 이제 알아.
그때의 너에게 딱 하나만 말할 수 있다면 이거야. 몸이 어렵다는 말을 하루 먼저 하는 건 하루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 쉬는 날을 만드는 것도 치료의 일부였고, 약속을 미루는 것도 게으름이 아니라 몸을 오래 쓰기 위한 선택이었어. 그걸 그때는 몰랐잖아. 지금이라도 알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무리한 다음 날 아침이 얼마나 다른지는 루푸스 피로는 피곤한 거랑 뭐가 달랐을까 글에도 적어뒀어. 언젠가 그 차이를 알고 싶어질 너에게, 미리 남겨둘게. 그때의 너도 결국 여기까지 잘 왔다는 것도 함께.
※ 이 글은 루푸스를 진단받은 환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의학적 조언이나 진단을 대체하지 않으며, 건강 관련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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